본문 바로가기

김명배문학상

향토문학상: 전명수 시인

향토문학상: 전명수 시인◉

 

응모시집: 다가간다는 것은(2019년)

대전에서 출생

1997년 순수문학으로 등단

호서대학 노인복지학과 박사 졸업

호서대학, 백석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천안문협 제25대 회장 역임

시집: 문득 지독한 눈물이, 다가간다는 것은, 미나리 궁전

거주지: 충남 천안시

 

 

당선 소감 / 전명수

 

 언어의 결 위에서 아직 덜 여문 것들을 추려본다.

어머니가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그 온기들은 언제나 밥꽃으로 피어났다.

이불속에서도 많은 문양이 그려졌다

밥꽃이 가득 필 때 쯤 술병에서 걸어오셨을 아버지

그 문양들이 어머니의 장롱 속에 가득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모자란 백지를 채우고,

채워진 백지가 시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것이 나를 숨 쉬게 한다.

그렇게 시가 왔지만 나는 시를 잘 알아보지 못했나 보다.

그 마음을 터놓고 싶었는데

제 목소리에 응답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딸내미집에 오시면, 의자에 앉은 너의 엉덩이만

보다간다는 어머니

팔순이 훌쩍 넘은 그 어머니께 이상을 바친다.

 

 

 

당선작

 

밥꽃 2

 

  밤늦도록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이불을 펴지 못하고 기다리다가 농 안에 개킨 두꺼운 솜이불을 펼쳤습니다. 그 안에 어머니 맨 처음 밥을 퍼서 꾹꾹 눌러 담으셨던 고봉밥이 와르르 이불 위로 쏟아졌습니다. 나는 밥알을 주웠습니다. 싸락눈 같은 밥풀때기들이 하얗게 더 하얗게 이쪽저쪽으로 쿵쿵쿵 뛰어다녔습니다. 그 밥풀때기를 이불 위에서 떼어 먹기도 했습니다. 밥풀때기를 주워 담는 것은 밥그릇에 가만가만 하얀 꽃잎을 피우는 일입니다. 밥풀때기를 주워 담는 것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 흩어진 꽃잎을 모으는 것, 아직도 그때 다 담지 못 했던 그것을 담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밥풀때기를 주워 봅니다. 아니 평생을 주워야 할지도 모르는 밥알입니다.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꽃입니다.

 

 

흰여울 문화마을에 눕다

 

  오래된 골목을 걸었다. 봄밤이, 새벽이 되도록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을 관통한다. 오래된 바람이 불었고, 불빛에 새어 나왔다. 분명 담벼락 후미진 곳에 핀 곰팡이꽃이 불빛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개화다. 녹슨 철대문에 어렴풋이 지워진 이름들이 깜박깜박 졸고 있다. 시간의 흉터다. 차마 다 지우지 못한 말이다. 이명이 되어 흔들렸다. 초생달이 뜨고, 그 초생달이 골목을 밀고, 골목이 오래된 철대문을 밀고, 철대문이 문틈으로 개망초꽃을 밀고, 개망초꽃이 다시 초생달을 밀고, 참 길고도 오래된 골목이 밀리고.

 

 

서대

 

  골목길은 길었고 느린 걸음으로 걷습니다. 바닷가 누항의 골목길 쪽으로 바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순간 골목이 한꺼번에 열리고 있습니다. 골목 안쪽 길게 늘어선 빨랫줄에서는 서대가 마르고 있었습니다. 꾸덕꾸덕 바다도 마르고 있었습니다. 언제 뭍으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서대는 아마도 바다가 열리면서 그 때 따라 들어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뻣뻣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걸린 골목길 빨랫줄, 누항의 골목에 서성거립니다. 어디만큼 가야 하는지도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두근거림 따위는 출렁이지 않습니다. 두 눈에 도도한 바다소리 그렁그렁 넘칩니다. 두 눈 모두 언제나 왼쪽으로만 바라봅니다. 익숙하지 않은 왼쪽으로, 익숙해질 것만 같은 왼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