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교양 /김명배
교양 /김명배
그놈은 지가 웃으면 내가 웃는 줄 압니다. 지극히 난처한 때는, 가령 큰 어른 밥상의 비린 반찬을 슬쩍 했다든지 어린 아기 간식을 꿀꺽했다든지 그럴 때는 지가 아니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나를 향해 크게 웃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놈의 구린 뒤를 몰라서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놈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고 또 숨기고 싶은 저만의 비밀이라는 게 있을 법한데 알고도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것 그것 역시 교양이 아니겠습니까. 그놈은 늘 나를 보면 웃습니다. 그래서 나도 웃습니다. 그놈은 아마 나를 길들이고 있나 봅니다. 그놈의 웃는 법은 꼬리를 치는 것인데 그런 소리없는 웃음도 세상을 밝게 합니다. 푸나무들 보십시오. 저것들도 그놈처럼 웃고 있습니다.
붕어에게 고하노니
너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많은 붕어 중에 하필이면 너,
배를 따고 칼집을 넣고
붕어찜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지만,
수궁의 후원을 거닐 때나
식탁 위의 접시에 누워 있을 때나
너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었구나.
설령 니가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노려 본다 해도
니 눈은 근시 안경 속의 혼돈 그것,
붕어의 눈속엔 왜 하늘이 없을까,
이제 너는 내 뱃속에 들어와 있으니
내 눈으로 하늘을 보게 되겠지만,
미안하다. 나는 아직
너를 만나면 니가 먹고 싶다.
그러니 너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세기의 별똥별이 수궁에 떨어져
니 머리를 명중시키는 확률보다
더 낮은 확률, 붕어야, 고하노니
너와 나의 만남은 인연이다.
천만번 니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나도
사랑한다. 나는 니가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