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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배문학상

제6회 김명배문학상 수상자 발표

6회 김명배문학상 수상자 발표


대상 
(최지원 : 동시 6편)

P01-015-008 동시 나이테
P01-016-014 동시
P01-018-024 동시 고라니 생각
P01-020-032 동시 나비가 되어
P01-028-068 동시 꽃씨 달리기
P01-033-098 동시 미운오리새끼


작품상
 (강태승 : 시 3편)

P02-050-032 비(雨) 또는 비(非)
P02-052-120 손과 손
P02-055-132 꽃신


작품상
 (최지안 : 시 3편)

P02-040-120 가젤 같은 거
P02-041-122 오고 계시죠 붉은 나무 흰토끼 숲
P02-044-148 서리 내리는 저 심장의 웅숭깊은 곳

 

6회 김명배문학상 경과보고 / 양수창(운영위원장, 예심심사위원)

  지난해, 제5회 김명배문학상 시상식을 마친 후, 한가지 특기할 사항은 동시를 쓰는 동시인 가운데, 동시를 김명배문학상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문을 넓혀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동안 김명배문학상을 운영하면서 동시를 참여하도록 문을 넓히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요청을 몇 번 받고 보니 생각이 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좋은 동시를 쓰는 작가를 발굴하고 시상을 하게 되는 일은, 장차 이 나라와 다음 시대를 짊어질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일이니 바람직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운영진들에게 의사를 타진하였는데 일반시와 동시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위원장은 제6회 공모를 위해 홍보용 디자인을 작성하면서 동시를 포함시켰다. 염려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운영위원장에게 “장르가 많아지면 심사하기에도 어려움이 있고 어수선해 보여서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는 분도 있었다. 동시인들 가운데 일부는 동시를 문학상에 들러리로 참여시켜 상은 받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만 주게 될 것을 우려하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본 위원장이 1993년 이미 동시 신인상으로 등단한 경험이 있고 좋은 동시를 만나는 기쁨을 알고 있기에 공모 홍보를 계속 진행하였다. 우리의 취지를 모르는 분들을 만나 오해를 받을 때는 동시부문의 참여를 내년부터 중단해야겠다는 흔들림도 있었다.
  공모를 홍보하기 위해 디자인을 만들 때, 착각하여 4월 1일부터 접수기간으로 표시해야 할 것을 3월 1일부터 접수 시작하는 것으로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3월 1일 접수가 시작되자 응모자의 성원이 뜨거웠다. 그런 가운데 동시집의 접수가 상당수 있었고 동시인들의 관심과 참여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월 31일 마감일이 지나고 당일 소인을 인정한다고 공고하였기에 8월2일까지 기다려 접수 마감하였다. 마감한 결과는 우편 및 택배로 접수한 인원 80명, 인터넷으로 접수한 분들이 23명이었다. 잠시 숫자를 헤아리는 과정에서 인터넷 접수 인원을 22명으로 잘 못 파악하여 총 102명으로 알았으나, 재검토한 결과 총 103명이 응모하여, 지난 해의 67명 응모에 비해 36명이 증가한 숫자가 제6회 김명배문학상에 도전한 것이다. 응모할 때 1권의 시집을 응모하면 되지만, 2권 혹은 5권을 보내는 분도 있었다. 더우기 각기 다른 시집을 2권 혹은 3권을 응모하여 총 응모자는 103명이지만 그 이상의 분량을 심사하여야 했다. 굳이 동시 몇 명, 일반시 몇 명, 시조 몇 명, 평론 몇 명을 구체적으로 보고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각 장르별로 구분하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단 평론에서 2명의 평론가께서 참여하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예심을 마친 결과는 동시 62편, 일반시 72편, 시조 11편, 평론 1편, 총 146편이 작가의 이름은 지우고 코드번호를 부여하여 본심 심사위원들에게 전달되었다. 동시 작품의 약진이 커서, 동시와 일반시의 예심통과 작품 수가 거의 비슷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심사과정에서 어느 한 장르에 점수가 편중되게 몰리거나 소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심사위원들에게 동시와 일반시에 비슷하게 조건을 요구하였다. A등급은 동시에 4~5편을 배정하고 일반시에도 4~5편을 배정하도록 하고, B등급은 동시에 8~10편을, 일반시에도 8~10편을 배정하도록 요구하였다. 시조와 평론에는 자유롭게 등급을 주도록 하였다. 동시를 가볍게 여기기 쉬운 문제를 극복하고 좀 더 깊숙하게 동시를 살펴보고 판단을 하도록 조치한 요구였다. 동시를 가볍게 여겨왔던 심사위원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동시에 A등급 4편을 선정하고, 일반시에 5편을 배정할 것이기에 동시를 특별 예우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시에만 치우치지 않도록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이었다.
  A등급에는 30점을 부과하고, B등급에는 20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전과 같았으나, 어느 한 사람에게 편중되게 점수가 쏠리는 현상을 막되, 정말 좋은 시에는 점수가 몰릴 수 있도록 조치를 하였다. B등급을 받은 작품이 어느 한 분의 심사의원에게만 20점을 얻고 다른 두 심사위원에게 채택되지 못하여 20점만 얻게 될 경우는 점수 획득에 실패하고, B등급을 두 명 심사위원에게 얻을 경우 40점이 되어 점수를 인정받도록 하였다. A등급은 30점이기에 한 명의 심사위원에게 30점을 받아도 점수를 인정받게 하였다. 다시 말해 어느 한 작품이 최소 30점을 얻지 못하면, 그 점수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30점부터 점수를 합산하게 되어 고득점 획득자에게 수상의 기회를 얻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다. 이런 점수 합산방식에서는 많은 점수를 획득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작품은 고득점을 획득하고 높은 점수를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실험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점수가 흩어지기 쉬운 채점방식에도 불구하고 동시 부문에서 1위로 2, 3위의 점수획득자와 차이가 드러났다. 이에 심사위원 세 분 모두 동시를 대상으로 정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첫 동시 참여에 대상으로 선정된 것에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차세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결과라고 생각하여 고무되지 않을 수 없는 결과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일반시 부분에서는 점수가 흩어져서 고득점 획득에는 실패하였지만, 다른 응모자들과 차별되게 점수를 획득한 두 분의 점수가 치열해서 어느 한 분만 작품상으로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컸다. 이에 심사위원들 사이에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검토한 끝에 두 명 모두를 작품상 수상자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작품상은 1명을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나, 한 명 더 선정하여 심사위원들의 기쁨도 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상 두 분에게 공지한 상금 100만원씩 지급합니다.)
  제6회 김명배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외부에서 한 명도 모시지 않고, 김명배문학상을 이미 수상한 분들로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을 구성하였다. 김명배문학상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김명배문학상의 취지를 알고, 그에 걸맞게 심사하려고 최선을 다하여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


6회 김명배문학상 심사평 / 유종인(심사위원장)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여러 시편과 산문(평론)을 일별했다. 시편에는 시와 동시, 시조가 고루 포진했고 산문 평론은 한 편이 올랐다. 시집과 시편 원고를 보낸 시인들의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다양한 시적 주제와 소재, 표현의 색채 등은 하나의 경향으로 꿰기 어려울 만큼 나름의 진취적인 개성을 보였다. 무엇보다 흥미롭고 새로운 점은 아동문학 특히 동시의 일취월장이었다. 전통적인 대상 장르로 취급되던 시를 밀어내고 이번엔 동시에 대상이 주어졌다.
  최지원의 동시 <나이테> 외(外)는 현대 아동문학이 갖추어야 할 요소와 타파해야 할 지점을 영리하게 잘 취합하고 있는 듯하다. 새뜻한 상상력과 발랄한 표현, 따뜻한 정서가 서로 촉매처럼 작용하며 한 편의 동시를 맛깔나게 구성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랑의 너름새를 가진 동심이 두루 번져있는 가편(佳篇)들로 읽고 느끼고 되새기는 맛이 출중했다. 대상으로 미는데 흔쾌히 동의하였다.
  강태승의 <손과 손> 외(外)는 사물을 보는 참신한 시각이 우선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대상이 가진 범상치 않은 비의(秘意)를 들춰내는 눈썰미는 시인이면 누구나 갖춰야할 덕목일 텐데 이 시인에게 있어 그런 안목은 수승(殊勝)한 지경에 이른 듯하다. 삶이라고 하는 전장과 자연이라는 생태가 어우러져 일으키는 스파크를 끄집어내 보여줄 줄 아는 그 남다른 눈길에 애호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최지안의 <가젤이란 거> 외(外)는 저온(低溫)과 어둠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내면성을 발랄한 상상력과 경쾌한 시문으로 돋아내는 기지와 활력이 좋았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세계와 자아라는 두 줄의 궤도에 시라는 기차를 굴리는 듯한데 그 기차가 청룡열차거나 롤러코스터 수준으로 흥미롭게 전개되는 맛이 신선했다. 이런 시들의 활성(活性)에 따뜻한 눈길과 박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선(選)에는 들지 못했지만 열정과 시도가 갖는 열심인 응모작들과 시인에게 대상 못지않은 격려와 위로를 드리고 싶다. 후일의 더 좋은 작품으로 인연이 되리라 믿는다.
 -심사: 김선아, 김겨리, 유종인(대표집필)


대상 수상자: 최지원 시인

프로필

2014년 월간문학 동시 신인상
2016년 계간 《시산맥》 등단, 11회 최치원 신인 문학상
2019년 16회 황금펜 아동 문학상
2021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지원금 수혜
2023년 아르코 창작 발표 지원금 수혜
동시집 『초승달 지팡이는 어디에 있을까』, 시집 『얼음에서 새에게로』

거주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응모시집: 초승달 지팡이는 어디에 있을까


수상소감

  이름 없는 꽃을 찾아 오솔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발길이 끊어진 곳에서 풀이 우거져 길을 잃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의 울음 따라 오래 걸어 들어갔지요. 깊이 들어갈수록 들꽃들로 넘쳐났습니다

  처음 보는 들꽃들 사이로 옹달샘 하나 숨어 있었지요
. 누구에게도 들킨 적 없는 옹달샘은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는 옹달샘, 나는 옹달샘의 처음이 되어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옹달샘 곁에 오래 머물며 옹달샘의 눈이 되어 옹달샘을 읽으려 했지만 볼 수 없는 날이 길어졌습니다
. 옹달샘의 귀가 되어 옹달샘의 노래를 들어보려 했지만 들리지 않는 날이 길어졌습니다. 옹달샘이 나이길 내가 옹달샘이길, 옹달샘 한가득 내려앉은 하늘 위에 새겨보곤 했습니다.

  옹달샘이 나에게 조금씩 흘러들고 내가 옹달샘으로 조금씩 흘러들어 옹달샘의 노래가 나지막이 들려왔습니다
. 들여다볼수록 더욱 맑아지는 옹달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나 무릎 꿇는 날이 더 길어질 것입니다. 내 안의 옹달샘이 흐려지지 않도록, 더욱 옹달샘다워지도록

  가장 위대한 사람은 어린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동시를 쓰기 이전에 최선을 다해 가장 위대한 사람의 세계와 혼연일체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동시는 먼저 시가 되어야 하고 그 위에 다시 동시로 되어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처럼 동시는 결코 가볍게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었습니다. 어른보다 더 번뜩이는 어린이의 직관을 터득하기 위해, 천진무구한 동심에 가닿기 위해 십오 년 동안 가장 낮은 자세로 사물과 세상에 귀 기울였습니다. 옹달샘이 더 옹달샘다워지도록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동시,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간과하지 않는 동시, 사랑과 배려가 이미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동시 쓰기를 목표로 정하여 묵묵히 홀로 걸어왔습니다. 시에 못지않은 동시를 쓰고자 무수히 흔들리며 걸어온 발자국이 중심을 잡고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김명배 문학상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사랑으로 제자들을 감싸주시며 몸소 동심을 실천해 보여주신 최춘해 선생님, 우주로 이른 여행을 떠난 이름 없는 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 합니다.


▣대상 수상작품 

나이테  외 5편 / 최지원

꽃을 주고
그늘을 주고
열매를 주고
새들을 품어 주던
나무

받는 것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몸속에
점점 커져가는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누가 읽다 엎어 놓았을까

한 걸음 한 걸음 읽으며
들어갈수록
깊고 높아지는 책

눈이 멀고
귀가 먼 애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들어가

봄을 읽고 여름을 읽고 가을을 읽고 겨울을 읽는 동안

눈이 뜨이고
귀가 밝아져

허물을 벗고
훨훨 날아간다.


고라니 생각

강가 풀을 뜯어 먹다
사람들 고함소리에 놀라
겅중겅중 도망 다니던 고라니
눈 감아도 자꾸 떠올라
후들후들 떨리던 다리,
화들짝 놀란 눈망울,
예민하게 세운 귀를 일기장에 그려 봅니다
사람들 눈에 띄어
얼어붙은 몸 숨길 덤불을
왕버들 아래 우거지게 그리고
덤불 바로 앞에는
고픈 배 달랠 풀을 무성하게 그리고
풀들 사이에
놀란 가슴 주저앉힐 들꽃도
해맑게 그려놓아요
고라니가 외롭지 않게
친구 고라니 짝지어 놓고
저녁 늦도록 강가 풀숲을 뛰놀다
산으로 돌아가는 길 헤매지 않게
보름달도 환하게 걸어놓아요.


나비가 되어

선풍기 그물망 안에
감겨진 바람타래

끝도 없이
솔솔 풀려 나오네

아침부터 시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누운 엄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돌 감네

바람타래에 감겨
고치가 된 엄마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르네

바람 타래에서 풀려나면
잠에서 깨어난 엄마

어깨에 날개가 돋을 거야
나비처럼 훨훨 날을 거야.


꽃씨 달리기

캄캄한 흙 속에
웅크리고 있던 꽃씨
껍질을 깨고 나와
달렸어요

떡잎을 지나
쭈욱
속잎을 지나
쭈욱쭉
줄기를 지나
쭈욱쭉
있는 힘을 다해
달렸어요

덥고 목이 말라
쓰러질 것 같았지만
땀 닦아 주고
목 축여 준
비와 바람의 응원으로
꽃봉오리에 도착했어요

하늘에서 지켜보던
해님이
꽃잎 메달을 걸어 주었어요
나비와 벌들
축하의 입맞춤해 주고
나풀나풀 박수쳐 주었어요.


미운오리새끼

누가 붙여준 이름인지 몰라요
언제부터 불러준 이름인지 몰라요
종종 나를 검정이라고도 했어요
미운오리새끼는 외톨이여서
외톨이는 구석이어서
구석은 어두워서 검정으로 부르겠지만요
짐작해보니
코끼리 코를 만진 혹은 코끼리 귀를 만진
혹은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들이 붙여준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검정이란 이름도 괜찮은것같아요
검정이라 불러보면 깜깜한 밤이 떠오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밤은
벌거벗은 나무들 가려주는 옷,
숨어 다니던 길고양이들 놀이터,
아기를 품은 엄마 배 속……
그러고 보니
검정이란 이름 아주 따뜻한 걸요!
검정이란 이름 아주 편안한 걸요!

 

 작품상 수상자 : 강태승 시인

프로필

1961년 충북 진천 백곡 출생
2014년 계간 문예 바다 신인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머니투데이 경제신문 신춘문예 대상
시집; 칼의 노래 /격렬한 대화 /울음의 기원

거주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응모시집: 울음의 기원


수상소감

한국 청록파 시인이신 박목월 시인님의 제자이신
김명배 선생님을 기리는 문학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면서도 부족한 제가 받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푸른 꿈을 안고 어려서부터
문학 공부를 한다며 애쓴 세월이 사십 년이 지났지만
늘 푸성귀 같은 작품을 써 우울한 날이었는데
뜻밖의 작품상의 소식을 접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상을 받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정진하는 것이 선생님께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관계자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리며 더욱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작품상 수상작품 

비(雨) 또는 비(非) 외 2편 / 강태승

나무 속에 비가 내린다 하늘은 푸르지만
나무에는 한창 비가 내리는 중이다
질퍽질퍽해진 길을 맨발로 걷는다
신발 없어도 생()을 걸어가는 나무
한결같이 투정하는 소리가 없다
나무속에는 벌써 장마 졌다
흙탕물이 강둑을 넘쳐 논밭 덮치고
저승 가는 길을 끊어버렸다
겨울과 봄의 수작이 무너져
산골짜기까지 들이닥친 바다에
돌고래가 돌아다니는지 소란하다
해마다 한 번은 폭우가 쏟아져
흙탕물이 방 안에 들이닥쳐도
나무 속에 내리는 비는 나무 밖으로
한 번도 넘치지 않았다
태풍이 군홧발로 함부로 쏘다녀도
밖으로 물기가 비치지 않는다
그러나 매미는 장마를 용케 알고
나무에 침()을 넣어 마신다
나비도 마른 데에 앉아
흙탕물을 피해 나뭇잎에 맺힌
맑은 이슬만 받아 마신다
나무 속에 가랑비가 내릴 때
알게 모르게 그 밑에 서거나 눕는다
햇빛을 피해 선 곳이 강물이 출렁이는
문득 나무 밑임을 깨닫는 노루,
시방 나무 속에는 여름 장마가 한창이다.


손과 손

밥을 주던 손에게 죽임을 당한 개
등짝 쓰다듬던 손에게 목 졸린 개를
저녁의 식탁에서 손들이 먹고 있다
손자에게 아들에게 아내에게
서로 식지 않게 건네주고 있다
정녕코 바위같이 믿었던 손이
여름 건강식으로 개를 나누고 있다

잠시 주인에게 저항하던 믿음도 삶아
개고기로 맛 내었고
그래도 다물고 있는 입에는
칼을 넣어 마지막 한마디 물고 있는
혓바닥을 잘라 소금 찍어 먹는다
반갑다 흔들던 꼬리마저 썰어놓자
손과 손들이 잽싸게 다녀간다

개의 오장육부 손의 오장육부로 흩어진다
뱃속에 잘 도착했는지 트림을 한다
손은 그 소리를 행복하게 듣고
TV를 켠다 이라크 자살 폭탄에서
탄식을 하는 입술, 엊그제 다시
사온 강아지를 그 손이 쓰다듬고
손을 핥는 강아지 아직은 꼬리가 짧다.


꽃신

모가지 꺾이고 신발 흩어진 자리마다 민들레 피었다
싼 값으로 속잎 마구 떨어진 자리마다 웃는 냉이
생짜배기 무처럼 뽑혀진 발목들이 돌아오는 봄이다.
가족인 양 한 무더기 노루귀 짝 잃고 피어나는 복수초,

그때 신발 흩어진 것처럼 봄날 떡잎 잃은 목숨처럼
붉고 노란 개나리 진달래 일어서는 서우봉
모였다 흩어지는 바람에 재잘재잘 흔들리는 유채꽃
제일 먼저 동백꽃은 생피 솟듯 언제나 단숨에 달려왔다

꽃 진 자리를 용케 알고 아니 여기서 까맣게 식었다
햇빛에 불려 나오는 발목들 정녕코 여기서 접혔다고
산비탈마다 맨발 맨손으로 꽃이 된 신발들이다
아무런 값없이 이유도 모르고 함부로 꺾이고 잘렸지만,

화인(火印)으로 돌아오는 한라산은 벌건 꽃밭이 되었다
그래서 속절없이 빛나는 너븐숭이 옴팡밭 곤을동
봄나물처럼 살았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폭력에 져버린
수천 수만 꽃신들이 어깨에 맺힌 폭력 툭툭 털고 있다

살았을 때에는 고무신 꿰매었지만 이젠 꽃신을 신었다
진흙이 묻은 얼굴로 여기저기 밭에 버려진 남루였지만
함부로 쏘다닌 흉기에 뚝뚝 부러진 동백꽃이었지만
동지(冬至) 건너고 말았는가 꽃신들이 여기저기 오고 있다.


 
작품상 수상자 : 최지안 시인
(본명: 최류빈)


프로필

시집 ‘이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천년의시작)’, ‘아무튼 불가능한 세계(시인동네)’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천강문학상 우수상,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작품 ‘새 놀이’가 당선됐다.
광주일보 문화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3회 수혜받았다.

거주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응모시집: 이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수상소감

  일하던 와중 수상 소식을 전달받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 시를 통 쓰지 못하던 요즘이었는데, 입사 전 투고했던 시집의 작품이 선정됐다는 것이다. “팽이는 돌아야만 중심이 생긴다”(김명배 ‘'立'자 풀이’ 중)는 말마따나 위태롭게 공회전하던 나날이었는데 약간의 중심을 얻은 듯했다.
  쾌재를 부르고 기뻤지만 한편으로 문학상이 기치로 내거는 바를 숙고했다. 수상자는 신서정시의 활로를 개척한 김명배 시인의 ‘새로움’과 ‘서정성’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청록파 박목월의 제자이자, 자신만의 견고한 시적 아성을 쌓아낸 김명배 시인의 시세계에 조응하는 작품이 수상작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심사위원께서 시적 패기와 서정, 그 속에 녹아있는 새로움을 좋게 보아주셨다고 들었다.
  시집 ‘이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에 수록된 이번 당선작들은 나의 혼란스러운 나날들에 대한 탁본이다. 사랑에 실패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기워내려는 희망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 나는 내가 써낸 작품들을 다시 읽기 힘들고 아프다.
  그러나 이번 수상을 통해 책을 펴고 작품을 찬찬히 읽어 볼 수 있었다. 그 자체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아울러 김명배 시인이 추구했던 서정성의 한 극점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시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됐다.
  얼음판 위에서 회전하는 팽이 같은 삶이지만 쓰러지지 않도록 채를 잡으라는 격려로 상의 의미를 이해하겠다. 의미깊은 작품상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께 수상소감을 빌려 감사드린다.


 작품상 수상작품 

가젤 같은 거 외 2편 / 최지안

횃불을 높게 들어 올린다. 감지 않은 눈동자는 신이 두다 남기고 간 바둑돌 너에게도 꽃놀이패 묘수가 있던 거지

처음으로 찬찬히 내려다보는 가젤의 몸. 죽어서 온몸으로 동굴을 만드는 네 속에서 장묘를 치른다.

화려했던 가체 뿔, 긴 머리 여인의 고동색 치장은 아직 흘러내리지 않았으나 속에서부터 무너지는 산사태. 사바나! 질주를 그리던 등허리는 여전히 벌판의 소란 곁인데

나는 머리를 땋고 굴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으로 네게 다정해져 본다. 소화시키다 만 덤불과 불한당들 산성의 웅덩이에서 한 사람이 표류하고 있다. 나는 그걸 걸머지고 그저 붕 떠있었을 뿐 네게 종교인 적 있었어도 구원인 줄 몰랐는데

죽은 가젤 앞에서 으르렁대는 표범, 매서운 눈을 장기 알의 포신처럼 겨누는 놈이 온다. 놈을 내쫓아도 그것은 내가 으르렁대던 환청. 엄마 여기 뿌리내린 갈빗대와 박쥐 무리가 있어 손 휘저어도 몰려드는 공중 도돌이표들은 오늘도 적당히 으르렁댔다가 전복된다. 나의 이명, 음파로 불리는 각다귀 무리와 장송곡. 한동안 가젤의 허리춤에 종유석으로 돋아있었다.

박쥐는 머리에 한 뭉치 치장도 없어서 가볍다(그건 나일까) 바닥에 떨어진 검은 심장을 깜빡이는 눈이라 생각했으니 매일 불을 가져오는 프로메테우스 꿈만 꾸었다. 무병장수하는 박쥐와 표범 (둘은 나일까) 나는 불을 버리고 박쥐 옆에 나란히 단조로 매달린다. 너의 눈은 바닥에 나의 이마는 하늘에, 가젤에게 더러운 발끝만 보여 줘 왔다.

굳어가는 빙정 속 이곳을 몰래 떠나와 나는 네 발로 기어갔을까 비린 날개 펄쩍이며 날아갔을까. 거울을 보면 박쥐와 표범을 섞은 키메라 하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삐딱하게 서있다. 이제 무너지는 동굴 그리고 여기 더 없을 가젤 같은 거


오고 계시죠 붉은 나무 흰토끼 숲

오늘은 사막을 참아야 해
뜨거워지려는 기분을

후끈하게 혀 내미는 토스트마저

나는 어젯밤 열대야를 다 팔아서 차갑고 하얀 발, 원주민식 이름을 지어버린 뒤야

이제 황량한 땅을 건너 붉은 나무숲으로 간다
일년내내 우기雨期인 이상한 나라
여긴 사람들이 모래알로 분별없이 엉켜있어

분명 부딪히는데 어느샌가 저 멀리 서있는
도시인들, 무엇보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섹스야

사구에서 빠져나오려 남의 머리를 밟지 않는 숲 토끼의 하얀 발바닥이 있을 거야

내 뒤로 검은 발자국
사막에 찍어버려서

하루치 식량을 구워내려 만든 여행자의 형틀 같아 테두리부터 그을린 붕어빵들

도망친 곳에 낙원 같은 숲이 걸려 있을까. 물고기들이, 안개를 묘사하는 물푸레들이 모래 둔덕 한복판에서 꾸물거리는 저 마지막 춤

그런데 앨리스의 흙구덩이
그런데 붉은 나무숲의 카드 병정들

탈출해 도착한 숲은 바스러져 사막이 되어있어 홍등가를 닮은 저 붉은 나무 숲

몸은 작아졌다 커지면서 나무의 어깨에 갇힌다. 여기저기서 토끼 굴에 빠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하얀 발은 이제 회색 유령이야 더러워졌어. 나무 위 고양이는 생선을 다 잡아먹었군

도망자의 풀섶 여기저기서 무정하게
붉은 나무 숲에서 발밑은 모래 조각으로 부서지는가


서리 내리는 저 심장의 웅숭깊은 곳

우린 왜 자꾸만 오이밭에 누워?

이 밭에서 풋풋한 냄새를 맡으면 우리가 풀처럼 선량한 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잖아

등에 더러운 흙이 묻는데
우린 새하얀 와이셔츠를 즐겨 입는다

주머니에 차오르는 자갈을 비워내면서 노란 꽃으로 비 가리고
이대로 영영 누워

지렁이의 느낌으로 땅을 뒤섞고 싶다. 맨바닥에 옆으로 누워서 잠을 자는 당신, 나는 더 의욕적으로 재즈를 틀 거라고 말했지 너를 위해 심장의 한쪽 방을 비워 내고 하냥 거기 뽑혀질 잡초 같은 걸 무시로 심다가, 너를 위한다는 건 거짓말 나를 위해, 나를 위해 이 무용한 일들이 우리의 몸과 살이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되어줄 거라고. 물컹한 오이의 뼈를 붙잡아 줄 거라고 생각만, 생각만 했었다…………

별거 아닌 오늘을 살아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오이넝쿨은 오래오래 우리에게 엉겨 붙어줄까

뜻밖이야 나는 오이밭에서 일어나 무분별하게 핀 꽃만 보는데 새하얀 네가 저 진흙탕 속에 아직도 누워있다는 거. 옆자리를 비워 두고 무성한 풀 더미를 심어달라고 내게 빌고 있잖아

나는 한나절 비 오는 봄밤 야트막한 오두막
옆에 무단으로 누워서 높은 곳을 묻혀 온 물을 맞고 싶다. 곁에는 울리는 너의 영원한 노랫소리와 아이 같은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