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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배문학상

제7회 김명배문학상 수상자 발표

제7회 김명배문학상 수상자 발표

 

▣대  상 : 홍경나 시인

작품명 : 앙가발이 소반. 감낭구 아래, 엄마는 미나리가 두 단, 그 비린 것 한 토막, 자청파

 

작품상 : 김향기 시인

작품명 : 모 심을 무렵, 칼국수의 추억, 소나기 내리고, 감나무

 

7회 김명배문학상 경과보고 / 양수창(운영위원장, 예심심사위원)

  제7회 김명배문학상 공모의 결과가 나왔다. 제6회에 비해 응모 편수는 조금 줄었다. 지난해 제6회는 3월부터 공모를 시작하여 7월 말일에 마감한 반면, 올해 제7회는 4월부터 공모를 시작하여 7월 말일에 마감하였느니 한 달의 기간이 줄어든 만큼 20여명의 숫자가 줄어 들었다.  90여명에 가까운 시인 작가가 도전하였으며 어떤 시인은 2권의 시집, 또는 3권의 시집을 응모한 분들도 여러 명 있어서 응모한 분들의 열의는 매우 뜨거웠다.
  본 필자가 예심을 하면서 느낀 점은 예년에 비해,  올해는 눈에 뛰는 작품을 만나기도 힘들었지만 예심을 통과한 작품 평균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가 있어서 예심을 마치고, 본심 심사위원들에게 작품을 넘기면서 대상 과 작품상을 어느 작품이 받게 될 것 같다는 예측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예심을 하면서 모두의 시를 자세히 살펴본 필자만의 생각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결코 말하지도 않았지만, 본심의 심사 결과가 나올 때 역시 본심 심사위원들도 작품을 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예심자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제7회는 아예 예측이 되지 않아 누가 대상을 받을까하는 기대감 가운데 심사위원들에게 75편의 작품을 넘겼다.
  인터넷으로 응모한 시 10편이 본심에 올랐고, 그 외 시인 5명의 시집에서 선정한 시편들이 본심에 오른 반면, 동시 시인의 동시집에서 선정한 동시들이 본심에 올려졌다. 그리고 시조 시인의 시조집에서 선정한 시조들이 본심에 올랐고 또한 평론가 2명이 응모한 평론 2편이 당당하게 본심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기다리게 되었다.
  심사위원들에게 A등급 5편, B등급 10편, C등급 15편을 선정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1차 결과지를 받아 보니, 어떤 심사위원은 A등급 13편, B등급 23편을 선정하였다. A등급 5명 요구하였는데 13편, B등급 10편 요구하였는데 23편, 2배가 넘는 작품들을 좋은 작품으로 선정하여 점수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그 정도는 덜 하였지만 기준으로 정한 작품 편수보다 더 많은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이는 심사하는데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운영위원장은 대상과 작품상을 수상하게 될 시인을 선별하려고 작품 수를 정하고 반드시 지켜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A등급 30점, B등급 20점, C등급 10점을 계산하여 30점의 좋은 등급을 받아도 다른 두 심사위원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합산 점수에 계산하지 않고 두 심사위원 이상이 등급을 준 작품의 점수만을 합산하여 총점을 가지고 대상, 작품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어렵게 A, B등급의 수를 줄여 규정대로 편수를 선정하게 하였다. 그래도 C등급에 많은 수의 작품을 선정하였기에 이번에는 C등급은 아예 점수에 포함하지 않고 A, B등급만 합산하여 점수를 계산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C 시인이라고만 표기한 홍경나 시인의 작품들이 우수한 점수를 획득하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작품상은 세 분 심사위원에게 점수를 획득한 B 시인의 합산 점수가 작품상을 받아야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다른 문학상에서 상을 받은 작품과 동일한 작품을 우리가 선정을 하였기에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사실로 드러나 그 작품을 점수 계산에서 제외하고 보니 점수가 낮아져서 작품상 수상자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아쉽지만 내년에 다른 작품으로 다시 도전하여 더 좋은 결과를 얻기 바란다는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다음 순위를 선정하였는데, D 시인으로 표기했던 시조의 김향기 시인의 작품이 작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대상의 홍경나 시인과 작품상의 김향기 시인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김명배 시인은 고향 천안을 떠나지 않고 향토문학 발전에 큰 업적을 세운 분이신데, 고향(대구) 향토 언어를 사용하여 시창작에 최선을 다한 홍경나 시인이 대상 수상자가 된 것과 김명배 시인의 고향 천안에서 시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김향기 시인이 작품상 수상자가 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새겨 보게 한다. 이번 제7회 김명배문학상은 향토문학에 대한 진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 더욱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에 치열하게 함께 경쟁하였던 시인들과 평론가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내년 제8회에 다시 응모하여 좋은 결실을 얻게 되시기 바란다.
  내년에 더 많은 시인들이 더 좋은 작품집으로 도전하여 대상 수상자의 영예를 차지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경과보고에 가름한다.

 

▶제7회 김명배문학상 심사평 / 유종인(심사위원장)

  폭염의 나날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이번 문학상 응모의 열기를 누르기는 쉽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답지한 응모작들을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고하고 심사하는 일은 그 수고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정서와 정신의 샘물을 새로 떠보고 그 샘터를 발견하자는 종요로움에 있다. 더불어 김명배 선생이 추구했던 고담하고 개결한 시세계와 서정시의 맥락을 후학과 후배들이 어떻게 창신하여 이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치를 우리는 보통 작품이 지닌 참신함과 수월성 등에서 찾는다. 참신함이란 단순히 낯선 것이 아니고 새로운 깨우침의 개성이고 수월성은 그 개성을 어떻게 미감(美感)을 지닌 구성체로 잘 이루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읽힐 수 있다.
  본심에 오른 여러 시편을 읽고 느낀 소회는 개성적인 깨우침의 영역과 그것을 아름다운 면모로 구성하는 형상화가 일정한 틀 안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소구력(訴求力)있는 시의 패기 같은 것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시적 관습에 안주하려는 경향은 좀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응모작들이 가진 열의와 보편적인 문학성에의 믿음과 시적 추구의 공고함, 개성적인 약진을 이루어내려는 나름의 고심 등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응모 전편에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었다.
  또 장르적으로 시뿐만이 아니라 동시, 시조, 평론에 이르기까지 치우침 없이 다양한 장르에서 응모가 이뤄져 앞으로 상의 규모와 함께 발전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과 기대를 갖게 하였다. 특히 편수는 많지 않지만 김명배 선생과 관련한 평론의 응모는 나름의 조사와 연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열의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취지의 그럴듯함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인식의 나열이나 자의적인 생각에 기반한 논거가 불분명한 리뷰 성격의 요소가 혼재하는 등의 단점은 아쉬움으로 작용했다. 앞으로 더 정치한 분석과 비평적 논증의 보충으로 좋은 평문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상으로 뽑은 홍경나 시인의 <앙가발이 소반> 外는 우선 점차 사라져가는 지방언어가 지닌 입말의 뉘앙스를 소중히 시적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첨단의 언어가 꼭 도시적 언어이자 소재를 취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인의 입말의 시어를 통해 개진되는 농촌문화의 귀중한 공동체적 심성의 토대는 자연스레 서정적 아우라와 잃어가는 순정한 정서를 일깨우는 덕목으로 작용했다. 향토어의 시공간을 구순하고 애잔한 기억으로 소환한 환기력은 언제든 소중한 인문학의 자산이다. 다만 소중한 기억의 선택적 취재와 재현이라는 이 콘셉트가 고스란한 재현을 넘어 시인의 개성과 함께하는 지점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작품상으로 김향기 시인의 <모 심을 무렵> 外는 향토색 짙은 농촌정서와 자연친화적인 서정성이 푼푼한 시조편이다. 우리 고유의 정형률을 준수하면서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시조의 표현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무엇보다 관념에서 이끌어온 시적 정서가 아니라 시인이 생활 속에서 갈마든 생각과 느낌을 취재해 시조의 자양으로 삼았다는 점이 끌밋하게 작용했다. 무리없는 형상화는 일상 곁에 시조가 함께하는 친근한 소재 등을 통해 시조적 활기를 도모하고 있다.
  두 분 시인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아쉽게 밀린 분들께는 더 좋은 기회와 정진의 도량이 열려있다는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심사위원 : 유종인(글), 김선아, 조수일-

 

대상 수상자: 홍경나 시인

프로필

대구 출생
시집 《초승밥》
2007년 <심상> 등단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22년 천강문학상 수상
2023년 문학나눔도서선정
응모시집: 《초승밥》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주

 

수상소감


그늘받이

치자나무에 또 흰꽃이 피었습니다
우두커니 몸이 환했답니다
당신도 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우선 "수고 했다" 제 자신에게 격려의 말을 해 주겠습니다. 정답고 그리웠던 풍경을 오래 꿈꿔왔던 풍경을 직관케 하는 상쾌한 환희를 선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고마운 사건을 고스란히 누리겠습니다.
  상이 주는 의미는 모두 각별하겠지만, 김명배문학상은 제게 있어 특별히 각별합니다. 토박이 말을 사용해 작업하고 있는 제게 ‘그것 봐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고, 어쩌면 그늘받이처럼 여겨지고 있는 토박이 말 글의 무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제 글에 더욱더 자신감을 가지고 제 자신을 다독이고 신뢰하며 스스로를 응원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팽이는 돌아야만 중심을 만든다. 중심이 있으면 똑바로 선다."는 김명배 시인님의 싯구처럼 간단없이 정진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의 글이 아닌 어떤 글로만 보았기에 제 글이 선정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트렌드에 부합하는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을 글로써 평가하고 글로써 온전한 가치를 부여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김명배문학상의 무구함과 올곧음에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명배문학상의 무궁 발전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상 수상작품 

 

앙가발이 소반 외 4편 / 홍경나


큰집인 우리 집엔 언제나 손이 끊이지 않았다
종조부 기터할배는 갓 뜬 꽃국을 올린 독상을 받았고
가끔 생선을 팔러오던 읍내 합천댁도 툇마루에서
찬밥 물에 말아 늦점심을 하고 갔다
꼭 밥때 맞게 찾아오던 알분다이 종기할매는
할머니캉 고모캉 내캉 먹던 두레상에 취식取食했다
모내기철 팥밥에 쑥개떡 찌고 기름 둥둥 뜨는 고깃국 끓여 중참을 대고
스무주(二十日酒)를 잘 담던 사창댁 우리할매는
불쑥 찾아와 우리 모가치를 덜어가는 군손님에게도
눈물콧물 짜는 일가붙이들에게도
언제나 배껏 밥을 먹였다
밥 좀 주이소
사나흘에 한 번 꼴로 구멍 난 벙거지를 쓴 곱사거지가 찾아 왔는데
그때도 여물 끓이던 사랑채 아궁이 옆으로 불러다가
왜사기주발에 감투밥 담고 지렁장과 요것조것 긍거이 받친
소반상을 내주었다

내 집에 든 손 기냥 보내는 거 아이다
물 한 대지비라도 미기 보내야 하는기라
낭중에 손치성하믄 꼭 소반에다 받차 해라

새까맣게 그을음이 앉은 정지깐
할머니가 깨끔받이 닦아 걸던
귀 닳은 앙가발이 소반


앙가발이 소반 : 다리가 짧고 밖으로 굽은 조그마한 소반.
꽃국: 항아리에 빚어 담근 술이 익을 즈음 처음으로 떠내는 맑은 술.
알분다이: 매사에 알고 싶은 것이 많고 아는 체를 하는 경박스러운 어른이나
아이를 이름.
모가치 : 몫으로 돌아오는 물건
배껏 : 배의 양이 찰 만큼
긍거이 : 반찬
대지비 : 대접
손치성: 손님 접대


감낭구 아래



꼬장꼬장하기로는 근동서 제일간다는 사창어른
연애질 하나는 타고난 큰딸 있었다는데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덜컥 애를 뱄다는 소문이 돌고
소문은 날마다 불러오는 배를 처맨 무명천보다 단단해갔는데
조조 새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새어나오는 것이
사창어른 그 소문 듣던 날
뭉툭 머리채가 잘린 큰딸은
안뜰 감낭구에 새끼끈 홀쳐매고 목을 달았는데

꼴망태 메고 막 삽짝문을 나서던 새끼 머슴은
왜낫을 들고 악착같이 키발을 했고
먹감낭구보다 더 시커멓게 속이 타들어 가던 사창댁
버르적거리는 딸년을 받차 들고 벌벌댔는데
꺼이꺼이 목을 놓는 소리가 하도 캄캄해 도끼처럼 사나웠는데
늙은 감낭구가 휘청 시름없이 가지를 내려놓았다는데
목을 달아도 꼭 감낭구에 다는 년 고마뒈지구로 내나라
햇발도 슬며시 구름 뒤로 숨고
햇발 숨듯 뒤안길 돌아 사랑으로 드는 사창어른
꿀컥꿀컥 삼킨 속울음에서 주홍빛 날비린내가 났는데
퉤! 한입 가래가 감낭구서 떨어진 개락 난 홍시 같았다는데

넘우사 인줄도 모르고 사창댁 무릎 위에 널브러져 누운 큰딸
볼그족족 귀밑까지 차오른 화냥기가 한바탕 째지게 걸린 홍
시 같았다는데

조조: 조잘, 조금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계속하다.
새실: 수다 떨다.
키발: 발돋움
개락: 부피나 양이 많다
넘우사 : 남우세


엄마는 미나리가 두 단


미나리가 한창입니다
미나리꽝엘 들러 살지고 푸진 미나리를 삽니다
나도 한 단 서울 동생도 한 단 삼우제 참석 못한
막내 동생도 한단 엄마도 한 단
아니 엄마는 두 단
아버지 돌아가시고 함께 입 다실 이도 없는데
미나리강회 미나리무침 미나리김치 미나리적
어떤게 더 맛나냐고 물어볼 아버지는 없는데
엄마는 습관처럼 미나리가 두 단

푸렇게 데쳐 무치고 사박사박 날로 지래기 하고
콩기름 둘러 적을 지져
저녁상을 차립니다
배고픈 몸들이 속수무책으로 붐비며
숟가락 젓가락만 달그락거립니다
어떤 게 더 맛나냐고 물어볼 아버지는 없는데
서로 닮은 무릎들이 맞대고 앉아
미나리 두 단을 알뜰살뜰 다 먹습니다
이따금씩 눈 맞춰가며 다 먹습니다


그 비린 것 한 토막


비린 것 한 토막이 먹고 싶다 하셨네

할머니는 즐기던 녹두죽도 근가웃 사태살 폭 고아 베밥수건 밭여 끓인 장국죽도
곱게 쌀알 갈아 홀홀하게 익힌 무리죽도 응이도 기어이 넘기지 못했네

음식솜씨 짭찔받던 그니는
뜬숯 피운 풍로에 새옹밥 짓고
적쇠 걸어 간갈치 한 토막 노랑노랑 구워내셨네
솔솔 김이 오르는 이밥 위에 얹어주던
그니는 잔가시 지느러미 살 발라 먹고
간지숟가락에 뜬 이밥 위에 실한 살점 골라 얹어주셨네
그니가 아, 하면 나는 따라 아, 입 벌려 받아먹었네
제비둥지 제비새끼같이 받아먹었네
아시를 보고 생청붙이는 내게 빈젖을 물려주던 그니가
이제는 북천北天 바다 갯내 같은 비린내를 풍기는 그니가
물 만 밥에 비린 것 한 토막 얹어 먹고 싶다 하시네

나 혼자 아, 아, 입 벌려 받아먹던
그 비린 것 한 토막

새옹밥 : 놋쇠로 만든 작은 솥에다 지은 밥
간지숟가락 : 곱고 두껍게 만든 숟가락
생청붙이는: 억지스럽게 모순되는 말을 하는


자청파


할머니가 자청파 심을 고랑을 파고 있습니다
호미로 판 고랑 가장자리 골은 나작했지만
가운데 골은 우멍 깊습니다
포기가름한 모종을 간조로미 고랑 따라 놓는데
갑자기 골 깊은 데 앉는 모종이 걱정입니다
하 깊이 묻으면
막 주머니에서 떨어져 자개농 밑으로 숨은 은전처럼
꽃구경 갔다가 여즉 돌아오지 않은 큰집할아버지처럼
싹눈이 영영 뚫고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호미등으로 따작따작 흙을 끌어다 덮으며
할머니가 그러십니다
가장 짚은 데서 촉이 먼저 올라온다 하십니다
짚이 묻은 씨알이 땅심을 더 잘 받는다 하십니다
그래도 걱정이 된 나는 할머니 모르게
고께고께 새앙쥐처럼 고랑 가운데 흙을 덜어내기도 하고
먼산바라기로 서서
소로소로 발로 흙을 흩어놓습니다
며칠 뒤 열무 솎고 정구지 뜯으러 남수밭에 갔을 때
정말, 고랑 가운데 자청파가 껑충
발돋움한 것같이 솟아 있었습니다
푸릇푸릇 성질머리 곧추세우고 긴 한배
짧은 한배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자청파: 쪽파
우멍: 물건의 바닥이나 면 따위가 납작하고 우묵하다.
간조로미 : 가지런이
고께고께 : 조심조심
소로소로 : 살살
한배 : 전통음악에서 박자를 이르는 말.

 

 작품상 수상자 : 김향기 시인

프로필

1957년 전북 고창 출생
1993년 ⟪창조문학⟫신인상 등단
제4회 ⟪하나로 선 사상과 문학상⟫ 대상 수상
시조집 ⟪보리 익을 무렵⟫,⟪토끼풀 수채화⟫
한국문인협회 회원
천안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거주지역 : 충남 천안시

응모시집 : ⟪토끼풀 수채화⟫

 

수상소감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에 지쳐 있을 때 맑은 샘물 같은 시원한 수상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반가움에 오후 내내 뭉게구름 위를 걸었다.

순천향대학교 천안 병원에 가면 의제헌 김명배 선생님의 시 ‘책을 읽고 있는 아내’를 자주 읽었다. 아내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전해져 온다. 공간에 머무는 무표정의 고독도 볼 수 있는 시인의 시선이 보인다.
바쁜 걸음으로 병원에 오가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시인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남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익히 들은 말이지만 생각 따로 작품 따로인 자신에게 늘 스스로 불만인 상태에서 〈제 7회 김명배 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종합 장르의 문학상에서 시조집時調集으로 수상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에 내심 기대도 하지 않았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 비교의 반열에 올려주신 여러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국문학과 향토문학 발전에 큰 발걸음을 남기신 김명배 선생님과 유가족 그리고 제자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고 계신 양수창 시인의 바람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여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

 

 작품상 수상작품 


모 심을 무렵 
외 3편 / 김향기



장다리꽃 밭둑아래 써레질 한 무논에는
하늘이 내려와서 편안히 머물도록
바람이 물 주름살을 쉬지 않고 밀었다

초승달의 눈짓으로 깨어난 뭇별들이
물위에 자리 잡고 날 새도록 놀고 있다
개구리 목청 높여서 비켜 달라 울어대고

밤마다 시끄러워 깊은 잠을 자지 못해
나이 보다 쉬이 늙은 밭두렁의 대파 꽃은
흰머리 끄덕이면서 한낮에도 졸았다


칼국수의 추억


빗방울이 토란잎에 미끄럼 타고 놀면
어매는 들일 접고 별미 음식 준비하여
대식구 팥 칼국수로 입맛 돋아 주었다

국수발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안반 위에 반죽으로 찰흙놀이 즐기다가
자신의 땅을 늘리듯 동그라미 늘렸다

아궁이 대신에 화덕에 불을 피워
동그란 대바구니에 삶은 팥을 걸러내고
팥물이 팔팔 끓으면 여러 솜씨 넣었다

저녁상이 차려질 즘 하늘도 맑게 개고
마당에 멍석 깔고 두레상* 차리면
후두둑! 별들의 군침 몇 방울씩 떨어졌다

*두레상: 여럿이 둘러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큰상


소나기 내리고


하늘에서 보내 온 풍요의 소식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왕관을 만들지만
그 영광 물거품으로 한순간에 사라진다

하릴없이 비를 피한 동공 풀린 여유 속에
세상의 모든 영화榮華 빗방울과 같다고
물위에 반사된 햇살 눈동자를 깨운다

땀 식은 바람결에 몇 방울의 아쉬움이
후두둑 머리 위로 재촉하며 쏟아져도
깨달음 얻은 발걸음 구름 위를 걷는다


감나무


감잎처럼 떠나간 자식들 고향 오면
결실을 나누고픈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지에 선물 보따리 주렁주렁 매달았다

누군가 다녀갔는지 수척해진 감나무
앙상한 관절 마디 찬바람에 시려 와도
남은 감 가지에 달고 눈길 멀리 보낸다

사람과 새들에게 제 몸 나눠 주고서도
또 다른 기다림을 등불로 매달고서
고향집 홀로 지키는 어머니가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