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명배詩 해설 및 평론

[스크랩] 김명배의 초기시에 나타난 실존주의

김명배의 초기시에 나타난 실존주의

-『靑銅色 音聲』을 중심으로-

 

 

 

1. 서론

 

 사람들의 마음에 새기고 싶은 한 편의 와 이름을 기억하고 싶은 詩人이 있는 한편, 는 없고 詩人이라는 칭호를 앞세우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다는 시인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의식과 지성과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를 대하는 순간은 뙤약볕에 건성으로 돌산을 오르다가 푸른 숲길을 발견하는 설렘으로 가슴이 트이는 순간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겨질 와 이름을 기억하고 싶은 詩人이 삶의 공간 가까운 곳에 있음을 증언할 수 있는 기회가 필자에게 주어짐을 반기며 김명배 시인의 소개와 함께 그의 시단 활동 초기의 시세계를 이 글을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김명배 시인은 충남 천안이 고향이며 지금까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경력이 없다. 문학청년 시절부터 칠순의 연륜을 넘긴 현재까지 詩作활동을 멈춘 적이 없이 묵묵히 시단을 지키고 있는 그는 개성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충남문단의 원로로서 위상을 갖추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공주사범대학을 다니던 그는 6·25 전쟁으로 인해 충남 공주에 피난 내려왔던 김구용, 정한모 시인 등 여러 시인들과 교류를 맺으면서 문학청년기를 보냈다. 1953년부터 ‘백양문학회’, ‘능수문학회’, 1954년 ‘과수원시회’를 조직하면서 대전, 공주, 천안 지역의 많은 문인들과 함께 지역문학 발전의 터를 닦으며 창작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56년에는 ‘호서문학회’ 그리고 ‘한국문학가협회 충남지부’에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57, 서울신문 현상문예에 응모했던 그의 시「소리·Ⅰ」은 최종심사에 이르러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박목월 시인은 그의 독창적이고 탁월한 시세계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1) 한다. 이와 같은 경력만으로도 문단활동이 가능했을 터이었지만 19731월 ≪현대시학≫에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을 하면서 그는 내용과 형식에 있어 완성도 높은 서정시의 틀을 유지하며 현재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명배 시인은『靑銅色 音聲(고려출판사, 1973),『둘째의 공간』(고려출판사, 1975),『바람아 바람아』(고려출판사, 1982),『소리가 있는 풍경』(혜진서관, 1986),『사랑하기 없기』(시세계, 1992),『이빠진산 두 봉우리』(오늘의 문학사, 2001),『산도 너스레를 떠는가』(오늘의 문학사, 2006) 7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에 관한 평가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시집의 서평이나 시 해설 등 知人에 의한 몇 편과 본격 논문의 양식을 갖춘 논의로써 김혜니의 논문 두 편이 있을 뿐이다.

 김명배 시에 대해 정한모는 「吾道感性調和」라는 제목 아래 ‘언어를 경영할 줄 알고, 간결하고 감정의 낭비가 없으며 자연을 받아들이더라도 이것을 일단 자기의 지성과 감성의 체로 걸러내어 재구성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대상에 끌려 다니지 않고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를 조절하고 이끌어 간다’2) 고 언급하였다. 조재훈은 『소리가 있는 풍경』에서 김명배 시의 관점은 정통적인 모더니즘에 맥이 닿아있지 않으나 철저하게 모더니티로 무장되어 있으며 이런 관점은 사물을 보는 눈이 엄격할 뿐 만 아니라 지적 훈련이 철저하고, 한 사물 또는 현상에 대하여 적절한 미학적 거리를 둠으로써 사물의 진면목을 드러내려는 의지로써 지적인 자기 절제의 끊임없는 싸움에서 얻어진 결과3) 라는 을 제시하였다. 채수영은 그의 시가 매우 단선적이고 때로 선적인 압축미를 특징으로 꼽으며 정적이고 대상을 육화하는 기교는 순수 투명의 중심에 헌신적이고, 대상을 보여주는 객관의 풍경화를 만나면 독자는 숙연해질 수 있어 아름다움과 손을 잡는 특성4) 으로, 한성우는 대상이나 세계에 대한 정서와 의식, 즉 순수서정과 내면의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방법에 있어서는 격정적인 감정의 직접적인 토로가 억제되고 客觀的相關物을 매개로 감각적인 이미지를 압축과 생략을 통한 정제된 詩句 속에 구조화 시키는 모더니즘 경향의 고답성과 지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5) 을 하였다. 이밖에 그의 전기적 사실과 함께 작품세계를 다룬 리헌석6) , 양수창7) 의 글이 있다. 이러한 평은 주관적 관점이 선행하는 인상비평으로써 학술적인 논의의 참고자료로써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김혜니는 현상학 비평의 다양한 이론적 근거와 철학적 사유, 바슐라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김명배의 초기 대표시 「靑銅色·Ⅰ․Ⅱ․Ⅲ」,「소리․Ⅰ」에 나타난 시간과 공간의 상상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한 논문과8) 신화와 원형 상징을 무속과 설화, 융의 분석심리학 이론으로 시「동방의 닭」,「달무리」를 분석한 논문9) 을 발표하였다. 이 두 논문은 김명배 시의 문학적 완성도와 문학사적 가치를 평가하는 토대를 마련한 연구 작업으로 간주된다. 김혜니의 논문은 현학적인 문학이론과 동서양의 철학적 사유가 넘친다. 그러나 이 논의는 친숙하게 이해될 수 있는 김명배의 시세계를 난해하고 의미심장한 경향으로 해석될 여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후속 연구자에게 부담과 극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김명배 초기시『靑銅色 音聲』에 나타나는 실존주의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 그리고 지성적 존재의 갈등과 고뇌를 시인이 경험한 공간과 대상에 투사한『靑銅色 音聲』은 김명배 시인의 실존주의적 사유와 태도가 선명한 텍스트이다. 특히『靑銅色 音聲』에는 50년대 후반 지적욕구와 현실비판의식이 팽배한 문학청년기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음을 근거로 당시의 사조로 수용된 실존주의 문학과의 관계성이 짙은 작품들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 것이다. 이런 필자의 작업이 이후 계속 진행될 김명배 작품 연구에 미미한 자료로써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청동색 음성』의 실존주의 양상

 

 

 20세기 전반기의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 기계문명의 발달로 육체와 정신이 소란해지는 상황이었다. 사상적으로는 기독교의 가치체계가 붕괴되고 사회적으로는 유기체적인 전통사회가 해체되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노동자의 봉기와 볼세비키 혁명이 실현되면서 유럽문명의 종말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대중은 소외감, 부조리, 질병 등 병적인 현상으로 혼란과 존재의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혼란 속에서도 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여러 방법으로 시도되면서 통속적 현상을 거부하고 경험세계를 기술하는 후설의 현상학이 탄생되어 의식의 내면을 추구하는 입장을 전개하였다. 현상학은 주체와 객체의 인식론적 교호작용에 있어 주체 의식의 내용 지향적 입장에 주목하면서 실존주의와 만나게 된다.10)

  실존주의 철학은 1930년대 독일에서 형성되었으며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정리되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실존과 실존적 사고와 주체적 진리를 역설11) 하면서 상실한 자기회복의 노력이라는 실존사상을 축으로 하여 모순과 갈등에서 비롯된 부조리의 인간 존재에 의한 불안과 절망 등 심층심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하이데커와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으로 이어지면서 사르트르, 까뮈의 실존주의 문학을 싹트게 한 동기가 되었다.12) 존재의 문제에 집중한 실존주의가 우리나라에 수용(1948) 된 이후 실존주의 사조는 이해를 돕는 번역, 해설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혼란과 불안의식, 죽음의 공포가 만연된 전후의 황량한 시대에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경향 속에서 실존주의는 지식인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논쟁과 비평, 작품창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 되었다.

 

 1) 지성적 존재자의 고뇌하는 실존

 

 김명배의 초기시에는 실존문학에 傾倒되었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주지적 의식을 지닌 주체로서 현상과 대상을 실존주의적 관점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김명배의 첫 시집 『靑銅色 音聲』은 ‘나’의 기록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나’ 이외의 인칭대명사가 제시되지 않는다. 흔히 호칭으로 사용하는 ‘너’, ‘그대’, ‘당신’ 등의 서술이나 묘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고뇌하는 시인 자신이고 시대의 모순과 갈등과 부조리에 갈등하는 지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靑銅色 音聲』의 첫 작품은 ‘나’의「分身」으로 시작된다.

 

비닐봉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허깨비처럼.

 

다이어에도 없는

汽車는 수시로 떠나고,

 

나는

무수한 나를

 

전송하고 있었다.

 

허깨비처럼

흩날리는 나의 분신들.

 

역광장에서

구름이 내리고,

바람이 내리고,

 

뒤돌아서서

뒤돌아서서

 

돌아온 모든 나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

허깨비처럼.

分身」전문

 

 이 작품의 화자이며 작가인 ‘나’는 ‘비닐봉지’이며 ‘허깨비’와 동일자이다. ‘비닐봉지’는 기계 산업에 의해 생산된 일회성 물질이다. 한 번 사용하면 원형을 유지할 수 없고 사용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생활 쓰레기가 된다. 무엇을 담아서 어느 곳에 묶여있거나 놓여있음으로써 유용한 물건이 되는 ‘비닐봉지가 흩날리고 있’는 모습은 아름답지도 않으며 역동적이지도 않다. 추함과 불안정의 풍경이다. 이름을 붙일 수 없고 감각조차 할 수 없는 허상의 존재 ‘허깨비’는 ‘비닐 봉지’의 이미지로 잠시 형상을 갖게 되지만 쓸모없는 속성은 변함없다. 헛되고 용도 폐기된 대상들이 잠시 존재하는 공간은 기차가 수시로 떠나는 ‘’이다. 마중과 배웅의 광경을 생동감 있게 그려낼 수 있는 ‘역광장’은 ‘구름’과 ‘바람’으로 음울한 공간이며 ‘허깨비’와 동일자인 ‘나’의 분신들을 날려 보내는 단절의 공간이다. ‘나’의 존재성을 ‘비닐봉지’처럼 가볍고 볼품없는 대상에 비유하는 의도는 존재에 대한 회의와 현실비판 의식의 표출하는 것이다. 現前의 의식과 기억 속의 ‘나’를 現存의 ‘나’로부터 모두 벗겨 날려 보내는 이미지는 ‘나’의 존재감이 흩날리는 ‘비닐봉지’ 만큼 가볍고 ‘허깨비’처럼 헛된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르트르가 진정한 자기는 근원적인 자기존재, 타자에 대한 인식 이전의 존재자체라고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시에 내재되어 있는 ‘나’의 공허감과 허무의식은 지성적 실존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더니즘적 실존주의는 실존적 개인의 내향적 성격이 강화되어 내면의식에 대한 집요한 묘사와, 현실사회로부터의 개인의 소외와 고립, 병리학적 중상 등을 현상학적 특징으로 나타낸다13) 이에 비춘다면 「分身」은 자존의 갈등에서 좌절하고 고립된 모더니스트의 문명비판의 단면과 해소되지 않는 불안한 내면세계를 ‘뒤돌아서서/뒤돌아서서 //돌아온 모든 나를/날려 보내고 있었다,/허깨비처럼.’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인의 자기 내면에서 소외와 문명비판의 시선은 공존의 대상물로 확대된다.

 

흔들리는 바라끄,

음속을 벗어난 긴 破擦音.

 

 

새들이/흩어진다

 

 귀먹은 空間

石油가 뜬 늪에

 

낮달은

떠오르는 죽은 물고기

 

잿빛 비늘이

떨어진다.

 

  -생략-

 

石油가 뜨는 늪

귀먹은 空間

 

갈라지는 긴 꼬리를 끌고

破擦音은 음속을 벗어난다.

「늪 地帶」부분

 

 「늪 地帶」에서는 자연물과 산업물의 대비가 암울하게 펼쳐진다. 종말의 이미지가 ‘음속을 벗어난 破擦音’에 꿰어져 ‘신경질적인’ 삶의 공간이 황폐화 되어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귀먹은 공간,/ 석유가 뜬 늪’, ‘떠오르는 물고기’, ‘잿빛 비늘’, ‘타이어가 삭는 공장’, ‘침목에 내려앉는/까마귀떼’, ‘공사장 철근의 숲’ 등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공포의 공간에 산재하고 있는 이미지들이다. 인간은 사색과 행동에 의해 환경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존재를 확인하고 생명의 영속성을 밝히며 최선의 삶을 추구하면서 자기를 형성해야하는데「늪 地帶」의 공간은  삶의 휴식, 치유, 재활이 불가능한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부조리한 사회와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신에게 의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最善의 이데아는 인간의 문명과 전쟁에 의해 황무지가 되었고 이미 신에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만연한 채 치유의 통로조차 막연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늪 地帶」의 ‘귀먹은 공간,/ 석유가 뜬 늪’은 현존의 공간이며 현전의 부조리에 의해 존재자가 안식할 수 없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염되고 황폐화 된, 즉 부조리한 공간을 거부한다 해도 그곳이 삶의 공간이며 현실공간이기에 떠날 수도 없고 실존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여기서 시인은 좌절과 고뇌의 늪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실존의 한계상황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한 줌의/ 銅錢을 뿌리듯/ 솟았다가 떨어지는/ 漢江僑의 새들/ 속에//

빌딩의 숲/ 아스팔트길에 흩어진/ 外米를 줍고/ 남대문에 사는/ / 한 쌍쯤,//

추녀 끝/ 忍冬무늬 바람/ 위에서/ 五百年 業으로 닦아온/ 가락/ 그 아아한 소리를/

잊은/ ,//

빌딩의 마다/ 씩 새겨진/ 方言/ 낯선 뜻을 기웃거리는/ ,//

南大門에서 사는/ / 한 쌍쯤,//

漢江僑의 새들/ 속에서/ 銅錢처럼 保護色으로/ 더러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南大門의 새」전문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공존하면서도 소외된 존재는 그 자체가 비애이다. 南大門의 새」는 두 가지의 비애가 대비되어 있다. 삶의 공간이 바뀌면서 본질마저 변질되는 실존의 역사성과 정체성의 비애가 그 하나이다. 漢江僑의 새들 속에’, 남대문에 사는 새 한 쌍‘은 서로 다른 본질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이다. ‘새’는 인간의 환치이다. 시인은 ‘五百年 業으로 닦아온/ 가락/ 그 아아한 소리를 잊은 새’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대한 비애를 인간의 부조리한 삶으로 환치시켜 바라보고 있다. ‘한 줌의/ 銅錢’이 황금만능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銅錢처럼 保護色으로’ 더러워지고 있는 삶을 사는 시대의 공존자들에 대한 비애가 둘째이다. 이처럼 인간존재의 무의미함,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불능, 인간의지의 무력함, 인간의 근본적인 물질성, 비생명성, 비역사성 등으로 규명되는 인간의 부조리 현상을 바라보는 시인은 ‘새’를 상징으로 실존의 비애를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2) 실존 의식과 주체성의 회복

 

 실존주의가 불안을 거론하는 것은 불안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 불안을 초극(超克)할 방도를 강구해 보기 위해서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소외, 인간상실의 이 시대에 인간구제의 성스러운 사명을 띠고 등장하였고 세계에 유행한 것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인간의 심층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파헤쳐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0년대 후반 이후 우리 문단의 사조에 있어 이러한 유행은 인간진단, 시대진단을 토대로 세기의 병을 고쳐줄 처방으로 실존주의에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극히 자유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이 그 자유를 구사하여 인간의 본질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말을 했다. 본질을 겉으로 드러내어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이 실존이다. 시인은 본질을 잊고 대상이나 상황에 예속되어가는 군상 속에서 자신의 실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탐구한다.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고 하는 것은 니체의 “신은 죽었다” 라는 사상에 연유한다. 신은 무든 존재의 근원이며 동시에 모든 가치의 근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이 죽었다 함은 모든 존재와 가치가 그 근원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을 하이데거는 던져져 있음(被投性)이라고 명명하였다. 우리의 생은 무() 위에 떠있다. 우리는 무() 위에 던져진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김명배 시인은 피투성의 근원을 거슬러 실존의 정체를 탐색하면서 실존의식과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어둠을 찢어 우는 여윈 모가지와 내 긴 목 빼어 소리소리 울면 덩달아 울어대는 골짜기와, 산과 하늘과 마구 부서져 내려앉는 벌판과 쏟아지는 별, 어쩌자고 서른 번을 넘어 울다 내 나이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면 땅, 살아있는 땅.

-中略-

풋병아리 목청을 돋군다. 용마루 위에 붉은 볏 세우고 길길이 울면 일제히 목을 뽑는 이 저 마을. 이윽고 틔어올 가슴 둘레 마음 두울레. 밤 없는 태양 앞에 천년 검은 숨이 한 마당 죽어갈 것을……

東方의 닭」1,5

 

허공을 요란하게 울고 있었다. 순간 부서지며 꺾이면서 彌勒마냥 서 있는 나에게 겹겹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어떤 姿勢를 가져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中略-

아무래도 또 한 번은 살육이 일고야 말 듯한 그 아래 나는 무엇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꼭 그런 소리로 들리고 있었다. 四月의 밤 꽃송이 피어나는 소리처럼 燦爛  …… 그 소리는 아직도 먼곳에 자라는 소리, 날아가는 새, 피는 꽃, 焦土 위에 귀 대어도 들리는 소리, 소리,

「소리·Ⅰ」부분

 

 「東方의 닭」의 신화원형 구조론을 근거로 연구한 결과에서 구조는 탄생()→성정(여름)→늙음(가을)→죽음(겨울)→그리고 재생()이라는 자연과 인간의 순환원리이다. 이미지들은 인류가 지녀온 원형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의 의미면에서 보면 공간과 시간, 태초와 먼 미래 그리고 자연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재생시키고 정화시켜주고, 하늘과 땅, 태초와 광음, 음과 양이 모든 것을 풋병아리에 응집시켜서 우리들에게 잃어버린 영원한 고향을 되돌려 주고 있다14) 고 하였다.

 이를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東方의 닭」은 피투성의 세계에 대한 실존의 근원을 밝혀주는 역사서와 같다. ‘내 긴 목 빼어 소리소리 울면 덩달아 울어대는’ 현상은 존재의 확인을 밝혀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존자의 울음을 대자연이 받아주지만 실존자는 삶의 허무감과 수치와 좌절을 ‘서른 번을 넘어 울다 내 나이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면'서 그가 서 있는 ’살아있는 땅‘을 의식한다. 생략된 2연에서는 태초부터 현재까지 실존자의 조상이 살았던 땅을 의식하면서 ‘東方드려 지켜온 여기’가 존재의 공간임을 확인한다. 3연에는 ‘흰 옷 다려 입고 두리두리 두레먹는 날 춤추어지는’ 한 때 평온했던 現前의 한때를 그려내고 4연에는 ‘언젠가 그때부터 끈덕진 어둠이’ 불안과 부조리의 그림자가 깔리는 것에 ‘어둠을 쫓고 싶은 깃발을 올리고 울대 세워 목뼈 흐느끼’며 저항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드디어 5연에서는 ‘풋병아리 목청을 돋’구는 저항의식을 드러낸다. 던져진 존재이지만 실존을 어둡게 하는 모든 부조리 상황에 맞서려는 의지는 ‘천년 검은 숨이 한 마당 죽어갈 것을……’을 예견하고 있지만 영혼과 실존을 증명하기 위한 주체의 저항의식이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것이다.

 「소리․Ⅰ」에서 시인은 실존을 위한 저항의 울림을 듣게 된다. 폐허를 딛고 일어서서 생명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시인의 강력한 생의 의지를 바탕으로 소리와 침묵의 변증법적 시학을 펼치고 있는 「소리․Ⅰ」은 현실에 대한 부정 인식과 그것에 대처하는 초극의지에 그 실천적 모티브를 두고 있다. 시인은 ‘나는 무엇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먼곳에 자라는 소리, 날아가는 새, 피는 꽃, 焦土 위에 귀 대어도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런 초극의 능력과 의지를 가진 자를 야스퍼스는 ‘포괄자’라 하였다. ‘포괄자’는 현실에 대한 좌절로부터 무엇인가 초월적인 대상, 즉 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세계를 객관적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고, 세계 전체를 내다보는 것도 불가능하며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한계상황에 직면해서 좌절을 체험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성의 한계 이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포괄자’를 자각할 수 있다. ‘포괄자’는 우리 삶의 지평이며 기반이기도 하다.15) 그 대처 방안으로 시인은 현실도피가 아닌 대결정신을 택하고 있다. 실존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명제나 논리적 체계의 확립이 아니라 영혼 스스로의 결단이며 선택이다.「동방의 닭」과 「소리․Ⅰ」에서 시인은 논증이나 증명이 아니라 영혼으로 하여금 본래의 자기 실존을 깨닫게 하고 거기까지 비약케 하는 실존의지를 회복한다.

 

 

照明이 켜지다,/室內 혹은 나의 內面에서//

이 닫힌다./ 빗방울을 몰고 오는 바람에/ 이 닫힌다//

照明이 켜진 室內에서/ 머리를 푸는 古典,/ 行間에서 음성이 살아난다.//

靑瓷 곁에서 생각하는 刻像// 엄숙하다//

깊은 동굴로부터 울려오는/ 가라앉은 靑銅色 음성의 深奧性,//

말씀을 듣는다

「청동색 ․Ⅰ」전문

 

가장자리를 물들이는 落,//

벤취에서/ 찬란한 畵帖을 덮는다//

구석으로 몰리는 休紙,/ 그림자가 떨어진다.//

비문의/ 靑銅色 淸朝體/ 가을 깊은 고딕의 階段,//

풀열매 까만 씨앗이/ 흩어져 빛난다.//

구겨져 버린 ,/ 구석으로 몰리는 休紙/ 後光이 머문다.

「청동색 ․Ⅱ」전문

 

 시인은 시원적 사유를 사유한다. 이 사유가 詩作하는 일이다. 詩作을 통하여 ‘내가 그 속에 있는 존재하고 있는 바 그 존재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그림으로써 타자와 그것을 공유하게 되는, 나누어 갖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의 공간 안에서 우리는 자아 가운데 타자의 現前, 다른 것 가운데 자아의 현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16)

 「청동색․Ⅰ」에서 시인은 하루의 분주하고 고단한 일상에서 돌아온 밤 시간에 본질적인 자아와 고독하게 마주하고 있다. 낮의 시간이 함축하고 있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사회적 자아의 탈을 벗어버리고, 밤의 시간에 본질적인 자아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고독한 모습으로 정신적 사유에 몰입한다. 이러한 시인의 참모습은 값있고 진중하고 빛나는 고전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17) '깊은 동굴로부터 울려오는/ 가라앉은 靑銅色 음성의 深奧性'을 깨우쳐 듣는 시인은 황량하고 허무하고 고단한 현실 공간에서 다시 ‘포괄자’가 되어 실존의 의지와 주체적 존재의식을 밝힌다.

 「청동색․Ⅱ」는 빛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낮/‘밤’. ‘한복판/구석’, ‘落/찬란한 畵帖, ‘그림자/후광’이 이항대립을 보이며 공존하고 있지만 결국은 시들지 않는 영혼과 의지가 빛나고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 아울러 고뇌하는 지성적 존재의식이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이 ‘비문의 靑銅色 淸朝體,를 새기는 것은 실존의지의 기록이다. 돌은 절대 고독과 단절, 침묵과 부동성의 표상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돌은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 남는 최후의 자연물로써18) 세계의 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돌의 세계는 시인의 내밀한 피난처가 된다. 시인은 육체의 유연함, 현실의 번거로움을 돌의 무한함과 고요함에 의해 위로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세계의 영원함을 획득하고자 돌 위에 문자를 새긴다19) 실존의 애환 속에서 ‘비문의 靑銅色 淸朝體, ‘씨앗이 흩어져 빛난다’, ‘휴지에 後光이 머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현실 상황에서 부조리, 허무, 고통, 신념, 미신, 존재, 구속, 우연성, 에 의해 좌절하기 쉬운 실존의 역동적 초월의지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3) 이방인, 그리고 대자적 실존

 

우체통 근처에서/名銜을 받고 낯설어진/ 옛친구와/ 헤어지다.//

신문광고에서 본 듯한/ 이름과/ 증명판 사진의/ 얼굴/ 얼굴들//

흩어지고/ 모이고/ 하루의 긴 行列/ 빠져 나가다//

거리는 샌드위치맨/ 목을 빼고/ 소리소리 외치는/ 看板方言,//

문자들이 와글거리는/ 틈바구니에서/ 손톱이 긴 倦怠/ 걸어/나오다.//

-생략-

뒤퉁거리는 거리/ 非構成의 거리,//

廣告 같은 生活의 거리를/ 지나면/ 반면의 세계는/ 훨씬 가까이 있고//

친한 친구가/ 자꾸만 낯설어진다.

非構成」부분

 

 「非構成」은 일상적인 도시에서 거리 풍경의 한 정면을 드라마처럼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비인간적이고 왜곡된 현대문명의 모습을 간접화하여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 자신의 어떠한 감정도, 가치판단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20) 하루하루 의미 없는 생활, 의지와는 무관한 세계, 무관심한 타자들의 거리에서 시인은 이방인이 된다. ‘낯설어진 옛 친구’, ‘낯설어진 이웃친구’ 와 헤어지면서 ‘친한 친구가 자꾸만 낯설어’지는 화자는 對自的 존재이다. 그런데 대자적 존재인 화자는 ‘소리소리 외치는 간판’, ‘와글거리는 문자’와 같은 모든 기호체계와 ‘텔레비젼’, ‘마이크’, ‘벽보’, ‘주간지’와 같은 전달매체들 조차 혼란을 가중시키는 무익한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화자는 ‘뒤퉁거리는 거리/ 비구성의 거리’ 살면서 실존의 일상이 가치롭지 못하고 따분하리만큼 반복되고 의미 없이 혼란스러운 현상들에 대한 불만 해소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흩어지고/ 모이고/ 하루의 긴 行列, ‘손톱이 긴 倦怠;와 같이 일상의 불만과 방황을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존에 권태를 느끼는 시인은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을 차단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상태의 이방인이 된 것이다.

 사르트르는『존재와 무』에서 對自的 존재는 인간으로서의 존재이며 의식이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그 존재의식 내에 부족함 혹은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을 가짐으로써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언제나 불만과 공허를 갖고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즉자적 존재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존재이며 의식이 없다. 의식이 없는 존재는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계획하고 욕망하는 가능성이 전혀 없으므로 언제나 현상태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는 존재이다. 타인은 일단 對自的 존재이지만 나에게는 즉자적 존재와 똑같이 대상화 된다. 즉 나의 의식에는 다른 사람도 하나의 사물존재와 마찬가지로 비친다. 그러나 타인은 즉자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 역시 나를 사물존재처럼 대상화 할 수 있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은 내게 사뭇 위협적이다.21) ‘신문광고에서 본 듯한 이름과 증명판 사진의 얼굴 얼굴들’이 ‘자꾸만 낯설어’지는 것은 對自的 존재에서 즉자적 존재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실존의 불안감의 표출이다. 시인은 이런 감정을 무표정한 태도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실존에 대한 불안은 김명배의 초기시 곳곳에 나타난다

 

 

찻잔 위에 피어오르는/ 방황을 본다 // 室內에 자욱히 깔리는 / 音樂//

어둠이 켜지는 刻像 의 눈/ 속으로/ 대로에 뛰어든 하루살이의/ 混亂이 든다//

-中略-

악수처럼 헤픈 찻잔의 뜨거운 입술을/ 어느 탁상에서/ 흥정하고 있는가//

靜寂은 검정발로/ 밟는다                                        茶房에서」일부

 

어딜 보나 나는/ 상점의 旣成服/ 누구나 맞고/ 누구나 맞지 않는/ 족보 속의 한 사람일뿐이다./ 어딜 보나 나는/ 나일 뿐이다                          視線」일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비합리성 사이에서 빚어지는 모순의 감정이 부조리이다. 이 부조리감은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오는 것으로 4가지 경우에서 일어난다22) 카뮈는 부조리한 삶에 처하여 그 모순을 합리화시키거나 논리화로 피해버리는 자기기만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를 긍정하는 태도가 반항이라고 하였다.

 시「茶房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배열된 詩語와 시적공간의 어지러운 이미지들이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시인의 실존의식과 태도는 부조리와 타협하거나 회피하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극적인 반항의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불만족과 부조리와 타락의 대상을 對自的 실존자로서 인내를 감수한다. ‘대로에 뛰어든 하루살이의 혼란’과 같은 삶이 ‘정적은 검정발로 나를 밟는다’는 한계상황까지 다다른다. 부조리에 대한 참된 반항은 침묵이며 실존을 바로 세우는 일인 것이다. 視線」에서는 ‘나’의 실존의 의미를 포착하여 재구성하는 企投性으로 ‘어딜 보나 나는/ 나일 뿐이다’며 실존의 불안을 극복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김명배 시인은 시를 통해서 삶에 대한 종합적이며 포괄적인 체험과 실존 의미와 가치를 사유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펼쳐 보인 것이다.

 

3. 결론

 

 김명배 시인은 1973년에 첫 시집청동색 음성이후 10년을 주기로 각각 2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1970년대에 발표한 청동색 음성,둘째의 공간에는 부조리하고 오염되어가는 삶의 터전, 즉 도시, 거리, 인공의 대상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실존탐구의 고뇌를, 1980년대 시집바람아 바람아,소리가 있는 풍경은 유년의 고향과 山寺의 자연물에 불특정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를 비추면서 실존의 불안과 부조리 의식을 벗어내고, 1990년대 이후 사랑하기 없기,이빠진산 두 봉우리에서는 고독과 친해지면서 사물과 현상의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감싸는 정서와 어조로써 達觀同化의 숙연한 이미지를 접하게 된다. 이 글은 시기별로 다른 특색과 정서를 보이는 김명배 시인의 작품세계 전반적으로 다루기 위한 출발선상에 선다는 데 의미를 두고 『靑銅色 音聲』을 텍스트로 하여 초기시의 실존주의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1950년대 후반 한국전쟁 이후 지식인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논쟁과 비평, 작품 창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실존주의 문학은 김명배 시인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의 초기시에는 실존문학에 傾倒되었거나 적극적 실천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현상과 대상을 실존주의적 관점으로 형상화한 증거는 작품 곳곳에서 수월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첫째, 지성적 존재자의 고뇌하는 실존으로 제시한「分身」은 자존의 갈등에서 좌절하고 고립된 모더니스트의 문명비판의 단면과 해소되지 않는 불안한 내면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고 「늪 地帶」에서는 부조리에 의해 존재자가 안식할 수 없는 오염되고 황폐화 된, 삶의 공간이 현실공간이기에 실존을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과 좌절과 고뇌의 늪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실존의 한계를 발견하였다.南大門의 새」는 삶의 공간이 바뀌면서 본질마저 변질되는 실존의 역사성과 정체성의 비애와 더러워지고 있는 삶을 사는 시대의 공존자들에 대한 비애를 논의로 삼았다. 둘째, 실존의식과 주체성의 회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東方의 닭」에서 피투성의 존재이지만 실존을 어둡게 하는 모든 상황들에 맞서려는 의지와 영혼과 실존을 증명하기 위한 주체의 저항의식이 목청을 돋우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고,「소리Ⅰ」에서는 영혼으로 하여금 본래의 자기 실존을 깨닫고 거기까지 비약 하는 실존의지를 회복하는 모습을,靑銅色 ․Ⅰ․Ⅱ」에서는 현실 상황에서 허무, 고통, 존재, 구속, 우연성 등에 의해 좌절하기 쉬운 실존의 역동적 초월의지의 흔적을 조명하였다. 셋째, 이방인, 그리고 대자적 실존에 관한 논의는「非構成,茶房에서」를 통해 불만족과 권태를 회피하지 않고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방관자가 되어가는 이유를 사르트르의 對自卽自에 대비시켜 불만족과 부조리와 타락의 군상과 관계 앞에 대자적 실존자로서 인내를 감수한다는 특징을 찾아보았다.

 김명배 초기시의 실존주의 양상 고찰은 그의 시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실존주의적 특성에 하는 불안과 부조리의 정체를 파악하고, 어떤 의식으로 초극(超克)할 방도를 詩作品으로 어떻게 형상화 했는지 찾는 작업이었다. 그의 작품세계가 적극적 저항인 앙가주망으로 발전하지 않은 점은 참여보다는 서정의 세계를 지향하는 개인적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의 초기시의 실존주의 양상은 사르트르보다는 까뮈의 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김명배 시인은 사회운동가가 아니고 철학적 사유의 세계에 심취하지도 않는다. 그는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의 실존으로서 부조리한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도피나 단절을 도모하기보다는 를 통해 자신의 실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탐구하면서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한 것이다. 그렇게 로써 저항하는 그의 실존은 시인의 본질을 추구하며 현재에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론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 글은 김명배 초기시의 실존주의 양상을 발견하는 한정된 작업이어서 그의 작품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의 출발선에서 두세 발짝을 내디딘 정도라 여긴다. 앞으로 김명배 시인의 작품세계에 많은 연구자들의 자취가 남겨지기를 말미에 희망으로 새긴다.

 

※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함


1)  김혜니, 「김명배 시공간의 상상구조 연구」,『박목월 시 공간의 기호론과 공간』, 푸른사상, 2004.p.263

2)  김명배, 『소리가 있는 風景』혜진서관,1986 (서문)

3)  조재훈, 美學的 距離와 어떤 ,시집『소리가 있는 풍경』,혜진서관,1986.해설

4)  채수영, 「탈속의 정서와 길잡이」,『김명배의 시와 삶』,오늘의 문학사, 2002, p27

5)  한성우, 「정신주의적 서정의 미적 형상화」,위의 책, p.30

6)  리헌석, 「김명배의 시와 삶」, 『김명배의 시와 삶』, 위의 책

7)  양수창, 「이별을 주제로 한 꽃들의 서정시」『김명배의 시와 삶』, 위의 책

8)  김혜니, 「김명배 시공간의 상상구조 연구」,『박목월 시 공간의 기호론과 공간』, 푸른사상, 2004.

9)  김혜니, 「김명배 시의 신화원형구조」, 위의 책

10)  홍문표, 『현대문학비평이론』, 창조문학사, 2003, p492

11)  키에르케고르는 역설변증법에 의해 실존의 단계를 3단계로 제시하였다. ①향락 속에서 자기를 찾는 미적실존 ②양심에 의해서 자기를 지키는 윤리적 실존 ③신앙에 의해서 본래적 자기를 찾으려는 종교적 실존이다.

12)  배경열, 「실존주의 문학론」, 『관악어문연구 제23집』p195-196

13)  배경열, 앞의 책, p207

14)  김혜니, 「김명배 시의 신화원형구조」, 앞의 책, p314

15)  발리스 듀스,『현대사상』,남도현 역, 개마고원,2002,p66

16)  김진국, 「새의 비상-그 존재론적 환열」,『현상학』,박이문외, 고려원,1992 p137

17)  김혜니, 「김명배 시 공간의 상상구조 연구」, 앞의 책, p271

18)  이부영, 『분석심리학』, 일조각, 1978 김혜니, 앞의 책에서 재 인용

19)  김혜니, 「김명배 시 공간의 상상구조 연구」, 앞의 책, p277

20)  한성우, 「정신주의적 서정의 미적 형상화」, 앞의 책 p.32

21)  남경태, 『철학』,들녘, 2007,p447

22)  1. 많은 사람의 생활은 기계적이다. 그 자신이 자신의 존재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의심을 일으킨다. 부조리의 예고다.

    2.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리한 감각, 혹은 시간이 파괴라는 인식

    3. 낯선 세계에 남겨져 있다는 감정, 나쁜 이유로 설명되는 세계라도 친근한 세계라고 까뮈는 말한다. 환상과 통찰력이 가자기 제거된 세계에서 사람은 자신을 이방인아라고 느낀다. 가장 강렬한 경우 이 소외감은 구토할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때 돌, 나무처럼 이름에 의해 일상 ‘길들여진’ 낯익은 사물들도 친근성을 탈취당한다

    4. 타자로부터의 단절감



출처 : 시인나라
글쓴이 : 솔로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