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당 /김명배
- 추억에서
할머니는 초당에 기거하셨다. 대숲 바람소리로 세상을 보고 사시다가 대처럼 속을 비울 수가 없어서 마음 더시며 사셨다. 밥 한술 더시거나 장롱 속의 묵은 옷가지를 더시거나 늘 절반으로 가득하셨다. 그러나 대숲 바람소리와 안산 초록색 연한 미소만은 덜지 않으셨다. 어릴 때 나는 어머니의 시집살이 회고담 속에서 할머니 연안 차씨를 처음 뵙고 할머니 차반의 다식과 안산 초록색 연한 미소를 먹고 자랐다. 이름있는 날이면 어머니 경주 정씨는 으레 품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셨다. 할머니는 대숲 바람소리를 눈으로 보고 사셔서 늘 절반으로 가득하셨다고. 나는 그때 그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대처럼 속을 비울 수가 없어서 하늘을 보며 사시다가 하늘되어 가신 어머니는 할머니를 모시고 초당에 기거하신다고 큰 누이는 믿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자리에 큰 누이가 함께 있는 꿈을 꾼다. 그리고 어머니 치마 속에 숨어서 하늘을 보는 목이 긴 아이를 만난다.
출처 : 시인나라
글쓴이 : 난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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