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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배시인의 영상시

동거인 / 김명배

 동거인 / 김명배

     - 허튼소리


    그놈과 나는 만나기만하면 충돌한다. 내가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정식을 즐기는 동안 그놈은 개처럼 식탁 밑에 앉아서 혹은 사랑의 황홀한 고민에 젖어 있기도 하고, 내가 호텔 특실에서 낮잠을 즐기는 동안 그놈은 침대 밑에서 고양이처럼 혹은 한사코 나를 당겨 방바닥에 떨어뜨리는 통쾌한 질투에 젖어 있기도 하고, 언제나 결정적일 때 내 콧등을 치는 그놈이 미워져서 호젓한 산길이나 광활한 초원으로 유인해서 갑자기 그놈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배를 타고 앉아서 그놈의 목을 졸라보기도 하지만 그놈은 와불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언제는 내가 그놈의 발목을 잡고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고 사정사정하고 이제는 그놈이 내 발목을 잡고 저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애원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놈이나 나나 서로 충돌하면서도 선뜻 헤어지지 못하는 까닭은 그놈이 마하트마 간디의 그림자를 닮아가고 있고 나 또한 존경하는 간디옹의 마지막 가을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놈의 키는 길어졌다 짧아졌다 해서 평균을 내면 내 키와 어슷비슷하고 사랑과 미움처럼 늘 함께 있는 같은 또래여서 하늘아래 무엇이나 다 어금지금하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놈과 나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만 이별할 수 있다. 내가 공원 벤치에서 석간신문을 읽고 있을 때 그놈은 어깨너머로 기웃거리고 그게 신경이 쓰여서 손찌검을 하고 싶어도 콧대높은 그놈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그놈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될 때까지 꾹꾹 참고 지낸다. 그놈과 나는 불편한 동거인이다. 이인이각 관계, 절대로 야합하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놈이나 나나 토담집 굴뚝의 매콤한 연기와 땅바닥에 제 이름을 쓰고 있는 그 소년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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