耳順驛 앞에서 / 이병석
기억의 점막에 묻어 있던 내 유년의 꿈
공원묘지 화장실 청소하다 발목이 삐었다.
삔 발목이 제 기억을 찾는 동안
청아제 한의원 병상에 누워 침을 맞는다.
접질린 기억이 따끔하다.
통증이 지속되면서 감각이 무뎌진다.
그랬다 기억이 자라는 동안 육체는 성장을 멈췄고
성장을 멈춰버린 육신은 더 이상 기억을 따라잡지 못했다.
기억은 무럭무럭 자라서 더 벋어갈 수 없을 때
주름 잡히기 시작했다. 머리로부터 점점 발끝을 향해
이마에 골이 패이고 볼이 쭈그러들고 목에 밭고랑이 생겼다.
주름 속에는 무수한 기억의 입자들이 숨어있다.
주름은 기억의 도서관, 생의 박물관이다.
접질린 유년의 꿈도 있고 청춘도 있고 볕에 그을린 중년도 있다.
저간의 모든 旅程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끔은 주름 속의 애틋한 기억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발목이 접질리는 날은 더더욱 그렇다.
꽃자리 좁은 내 푼수까지 품고 있는 주름 앞에서
耳順驛 앞에서, 삔 발목을 찬찬히 살펴본다.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는 도서관, 박물관
반질반질 닳아버린 문지방을 살펴본다.
발끝이 종착역인 주름, 명멸의 순간
발끝에서 기억과 육체는 한 몸이 될 것이다.
처음처럼.
-제1회 대상 수상자-
1985년에 한국문인협회 천안시지부 회원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문예사조』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였고,
시집 『끈에 관한 명상』 『묘원일기』 『이순역앞에서』 『하늘에 뿌리 둔 나무』를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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