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시인 / 우진용
나무는 시인보다 더 시적이라고
상투적인 언사가 아니다.
초록으로 세상을 점령한 위세에 눌려서도
철 늦은 빈 가지 쓸쓸한 뒷모습 때문도 아니다.
밑둥치 남기고 트럭에 실려서 간 뒤,
비로소 그가 남긴 둥근 시구를 보았다.
어느 시인이 온몸으로 제 나이를 그리겠느냐.
나도 나이테를 두를 줄 아는 나이가 되었는가.
담 벽에 기댄 채 묵묵히 깊어가는 그의 그림자.
채머리 흔들며 아니다아니다 이마에 스친 바람도
머리 풀며 취하도록 빗물에 흠뻑 젖었던 날도
돌아보면 한 시절 삭정이처럼 삭이게 되었는가.
겨울 초입,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그를 본다.
마지막 남은 잎새 몇 장 발밑에 내려놓고
한 해 단 한 줄만을 남길 줄 아는 그는
온 몸으로 테를 두른 계관 시인이다.
-제2회 대상 수상자-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웅진문학상, 충남시협작품상 수상.
시집 『흔(痕)』 『한뼘』, 교육서 『한자어에 숨은 공부 비법』
중등교장 퇴임 후 숲해설사로 <나무 인문학> 강연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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