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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배시인의 신서정시

붕어에게 고하노니 / 김명배

붕어에게 고하노니 / 김명배


너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많은 붕어 중에 하필이면 너
배를 따고 칼집을 넣고
붕어찜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지만,
수궁의 후원을 거닐 때나
식탁 위의 접시에 누워 있을 때나
너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었구나.
설령 니가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노려 본다 해도
니 눈은 근시 안경 속의 혼돈 그것,
이제 너는 내 뱃속에 들어와 있으니
내 눈으로 하늘을 보게 되겠지만,
미안하다. 나는 아직
너를 만나면 니가 먹고 싶다.
그러니 너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세기의 별똥별이 수궁에 떨어져
니 머리를 명중시키는 확률보다
너와 나의 만남은 인연이다.
천만번 니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나도
사랑한다. 나는 니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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